한국사 이야기

신라는 왜 함께 싸운 당나라와 다시 전쟁을 벌였을까?

백제와 고구려가 무너진 뒤에도 신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당동맹의 서로 다른 목표와 670~676년 충돌, 통일이라는 말의 범위를 살펴봅니다.

신라의 해안 성곽 앞 잔잔한 바다에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선단의 상징적 장면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실제 유물이나 검증된 역사 복원도가 아닙니다.

어제까지 같은 적을 향해 진군하던 동맹군이 오늘은 서로를 겨눕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는 데 협력한 신라와 당의 관계가 그랬습니다. 공동의 적이 사라졌다고 평화가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누가 그 땅과 사람들을 다스릴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동맹은 같은 미래를 뜻하지 않았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압박 속에서 당과 협력할 길을 찾았습니다. 당 역시 동북아 질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서로의 필요가 만났지만 두 나라가 전쟁 뒤의 세계를 완전히 같은 모습으로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당은 옛 백제와 고구려 지역에 통치 기구를 두었습니다. 신라로서는 당이 바로 곁에서 지배력을 넓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동맹의 성패와 동맹 이후의 이익은 별도로 협상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멸망한 나라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왕조가 무너져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 각 지역 세력의 선택은 전후 질서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라는 고구려 부흥세력과 관계를 맺고 안승을 받아들이는 등 이들을 포섭했습니다.

이를 처음부터 모두 한마음으로 신라를 돕는 과정이라고 그릴 수는 없습니다. 멸망한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기반과 권위를 지키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신라의 통합은 군사적 승리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었습니다.

싸움과 외교가 함께 움직이다

670년대의 나당전쟁에서 신라는 당의 지배 거점을 공격하고 백제 옛 땅에 행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동시에 당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버리는 한 방향의 행동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쟁과 외교적 교섭이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문무왕이 당 장수 설인귀에게 보낸 답서처럼 신라의 입장을 설명하는 문서도 남아 있습니다. 무력으로 맞서면서 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지를 언어로 다투는 장면입니다. 전쟁을 화살표가 움직이는 지도만으로 보면 이런 명분과 협상의 층을 놓치게 됩니다.

매소성과 기벌포를 넘어 보는 시야

675년 매소성, 676년 기벌포의 전투는 나당전쟁의 전개에서 중요한 승리로 꼽힙니다. 신라의 저항과 군사적 역량을 보여 주는 사건들입니다. 그러나 당의 선택은 한반도 안의 전투 결과만으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당은 다른 방면에서도 큰 군사적 부담을 안고 있었습니다. 여러 전선을 동시에 다루는 제국의 사정은 신라가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외부 조건을 고려한다고 신라의 성과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기회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보면 당시의 판단을 더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통일이라는 말에 포함되는 것과 남는 것

전투의 승리와 지역 통합의 시간도 다릅니다. 적의 군대를 물리친 뒤에는 성과 행정 거점을 유지하고 주민을 새 질서 안에 편입하는 일이 남습니다. 676년이라는 중요한 연도가 그 뒤 사람들의 생활과 소속이 바뀌는 모든 과정을 한꺼번에 끝내 준 것은 아닙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이라는 표현은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 지역과 주민이 신라 중심의 질서에 통합된 큰 변화를 가리킵니다. 동시에 고구려의 옛 영역 전체가 신라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북방에서는 이후 발해가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사건을 설명하는 범위와 용어에 관한 논의가 이어집니다.

통일의 의미를 인정하는 일과 그 한계를 설명하는 일은 함께 가능합니다. 역사적 결과를 오늘날의 국경과 민족국가 개념으로 곧장 재단하기보다, 당시 어떤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좋습니다. 동맹에서 전쟁으로 바뀐 과정은 공동의 적을 없애는 일과 공동의 질서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 줍니다.

앞선 시대의 동맹 변화는 진흥왕의 한강 확보, 통일 이후 바다에서 새 힘이 성장한 모습은 장보고와 청해진에서 이어집니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1. 문무왕 (새 창)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고구려 부흥세력 포섭과 나당전쟁
  2. 삼국사기: 기벌포 전투 (새 창)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문무왕 16년 11월 기사와 주석

자료의 성격과 전승의 차이는 본문에서 구분해 설명합니다.

ONE THING TO REMEMBER

한 줄 정리

신라와 당은 적을 무너뜨리는 데 협력했지만 전후 지배권을 나누는 목표가 달랐고, 그 차이가 나당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주리 · 한국사 이야기이 이야기의 오류 제보